한국 목욕탕의 역사: 사찰 목욕부터 동네 목욕탕까지
신라 사찰의 목욕 시설, 조선의 한증소, 1924년 첫 근대식 공중목욕탕, 그리고 오늘의 동네 목욕탕.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때를 미는 한국식 목욕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국 목욕의 역사를 간단히 따라가 봅니다.
삼국·통일신라: 절에서 시작된 공중목욕
불교가 들어오면서 몸을 씻는 일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 즉 목욕재계와 연결되었습니다. 신라 시대에는 사찰에 여럿이 쓰는 목욕 시설이 있었고, 통일신라 때 이미 증기로 땀을 내는 증기욕이 발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옷을 입고 하는 목욕, 그리고 한증소
유교 문화가 자리 잡은 조선에서는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 옷을 입은 채 몸의 일부를 씻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향이 나는 풀을 넣어 목욕하는 향초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 때에는 한증소가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데, 나라가 보호·감독하며 병을 치료하는 시설로 운영했습니다. 오늘날 한증막의 뿌리입니다.
1924년, 근대식 공중목욕탕의 등장
돈을 내고 들어가 탕을 함께 쓰는 근대식 공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 처음 생겼고, 이듬해인 1925년 서울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공중목욕탕이 늘어났습니다.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던 시절
집에 온수 욕실이 드물던 시절, 동네 목욕탕은 명절을 앞두고 온 가족이 찾는 곳이자 이웃이 만나는 사랑방이었습니다. 높이 솟은 굴뚝은 동네의 이정표였습니다. 지금 영업 중인 목욕탕 가운데에도 1970~80년대에 인허가를 받은 곳이 적지 않습니다. (연대별로 본 동네 목욕탕)
2000년대 이후: 욕실과 찜질방의 시대
아파트와 온수 보일러가 보편화되고 대형 찜질방이 유행하면서 동네 목욕탕은 빠르게 줄었습니다. 행정안전부 인허가 데이터에는 지금까지 폐업 신고된 목욕장이 12,127곳, 지금 영업 중인 곳이 5,720곳 기록되어 있습니다. 폐업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2000년대 초중반입니다. (폐업 이유 자세히 보기)
남아 있는 목욕탕을 기록하는 이유
동네 목욕탕은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 생기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동네지도는 남아 있는 목욕탕이 어디 있는지, 언제부터 그 자리를 지켰는지 기록해 두려 합니다. 오래된 목욕탕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우리는 어떻게 목욕했을까?」(2015), 행정안전부 목욕장업 인허가 데이터